인내력있게 하는 마음

요즘은 특히 그러하지만 공공적으로 도움을 주시는 분들도 친분이 깊지 않으면 도움주시는데 한계가 있죠. 특히 그러하지만 뭔가 복잡한 사정이 있고 이것이 문제가 되면 고립도 되네요. 인내력이라는게 먼거리를 걷고 극복하는 태도인데요. 이에 대한 해석도 여러갈래가 되지만 우선 인내력 자체는 그 사람 인생에서 제일 좋은 덕목입니다. 그런데도 궁지에 내몰리면 다들 억하심정도 느끼는데 그래도 인내력이 있다면 다들 도와야 하지만, 사실 그런 처지가 된 분들을 사귀려고 하지 않는게 세상일이라, 공공적으로 도움을 주시는 분들한테도 같은 생각이겠지…라고 논리적으로 생각하더라도 실재로 보면 그냥 이해하고 죄책감도 갖는 경우가 있네요. 특별히 체험주의 철학이 “The Body in the Mind”라는 책에서 전제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분들, 정신의학이나 인지과학, 철학자, 상담가, 정치학자와 같은 전문가분들도 입장에 따라서는 친분이 없더라도 이해해주시고 놀라운 도움을 주시는 경우도 있네요. 저도 이분들의 도움을 받았구요. 제 인생을 들여다보시게 한 수고로움이 생각나면 감사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한데, 많은 분들이 관찰만 해서는 잘 모르시는 것은 오히려 이런 모드가 새삼스럽게 보여서 힌트가 되서 그냥 감사하다고만 하는 그런 질서가 있기도 하네요. 도움준 분들이나 도움받은 분들이나 좋은 문화인데 정보가 중요한 경우 각자의 말못한 서로에 대한 배려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면 이게 또 사후 정당화의 근거가 되기도 하네요.

그래서 철학하시는 분들은 규범적으로 보느냐 성향적으로 보느냐의 원리를 연구하시는데, 운좋게 어릴적에서라도 보호받던 분들은 성향적으로 보면 딱 맞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논리적이더라도 둘다 해당이 안되게 정렬(alignment)되는 경우도 있네요. 전문가분들도 이를 아시기에 도움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인내력있게 하는 마음을 요구할때 비교 대상으로 설정되는 경우에도 각자가 처한 체험에 의해 허용되는 경우가 있고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인내력이 있어도 다른 사람은 감정을 즉시 말하는데 넌 왜 못해 이런 판단이 굴레가 되기도 하네요.

정도를 지키는 것도 이런 과정에 의해 됩니다. 초등학교 2학년생 어린이가 나라걱정한다고 하면 의견이 갈리듯이요. 모든 것은 추론적이고 은유적이라는 것도 최종 의미를 이해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고 규범적으로 우리가 찬성하는 한 조건도, 평소에는 문제없지만 유사시 대처를 더 쉽게 하는 방법에 대한 합의라, 이를 합의하는 여러 선택지를 제공하려는 의도입니다.

예를 들면 마이클 센델 교수님의 도덕철학서가 유행이었던 것도 이런 의미에서 유효하네요.

IT하시는 분들도 윤리학이나 실존주의, 심리철학, 언어철학을 보시면 관련 논의에 대해 나오니 이 글에서 안말한 철학 공부의 이유가 있게 될 것입니다. 평소에 필요없으니 안하시는 것이구요.

메타 인지가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보통 우리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불확실성과 사회 문제의 강도에 의해 규범적인 기준에서 볼때 메타 인지에 대한 우려감이 컸던 것이 1990년대까지의 사회 분위기였다면 요즘은 메타 인지가 권리처럼 바뀌었죠. 이전의 영향력이 여전히 있기는 하지만, 마치 보안 관련 지식을 요즘은 해결법 고안을 위해 다 오픈하듯이, 규범이나 도덕이 삶에 영향을 주는 지식에 대해서도 같습니다.

인내력있게 하는 마음도 잘 전유하면 손해보다는 구원받는 조건이 됩니다. 외형적으로 인내력이 발현되는 현상이 무감각과 동연적이라 오해도 있지만요. 도움을 받으려면 인내력을 어느 정도라도 발현해야 하는데, 역으로 이용되기도 하네요. 그러니 더 인내력을 요구받지만, 체험주의는 “인간종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아직은 발현이 안된 특성이 있으니 이를 배려하는 것으로 이행합시다. 우리가 실용적으로 적용하는 도덕 기준은 사실 실현 불가능한 이상입니다”라고 제안합니다.

부계냐 모계냐하는 구별도 인내력과 연관된 조건이기도 하죠. 이 경우에도 인내력이 관련된다면 순수 논리보다 더 높은 경지의 무엇이 있습니다. 더 높은 경지는 불편이 있어서 못한다면 타인에게는 왜 추천하는가와 같은 문제 제기도 가능합니다. 그러면 심판보다는 구명(rescue)이 가능한 것이 체험주의의 장점입니다. 과학에 대한 긍정이 전제되니까요. 예를 들면 “전전두엽은 공감을 조율하는 뇌 영역입니다”와 같은 일관된 연구죠.

“중력”(gravity)에 대해서도 원어권에서 볼때는 외국인들도 잘 알 수 있는 “질량을 가진 물체끼리의 끌어당김”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남녀 사이의 끌리는 감정”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심지어 “열린 창문으로 밖을 보다가 뛰어내림” 또는 “질량을 가진 고체 물질”로 이해하기도 하듯이 모든 것은 추론적이고 은유적이라, 인내력도 이 과정에서 해쳐집니다. 그러하다면 중력과 인내력에서 지시되는 선택지가 무엇일까요? 이런 의미에서도 메타 인지가 중요한 덕목이 됩니다.

충동을 억제하는 인내력이라고 할때도 논리적이기만하기보다 체계적인 인정도 가능합니다. 그러니 저부터라도 구명적이 되려고 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