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마타 형성과 사용 방식

사람이 인지적인 판단을 하고 실천을 할 때 그 기반이 되는 이해 구조를 스키마라고 하고 그 작동이 되는 기반을 스키마타라고 한다. 스키마는 학습과 기억에 있어 그 질료가 되는 재료로, 큰그림을 그려서 이해의 틀을 만들듯이 인지적 판단의 기저가 되는 인지 조건이다. 개념적으로 경험 독립적인 스키마가 있고, 이를 경험 채택적인 개인의 경험에 따라 체현해서 스키마타를 이룬다. 스키마가 개념에 근거해 있어서 우리는 처음 접하는 것에 대해서도 서로 이해를 할 수 있고 각자의 경험에 의해 채택되므로 개성을 가지게 한다.

예를 들면 너구리에 대해 알게 된 어린이가 자연 현상이나 동물 분류적인 배움의 즐거움을 토대로 너구리를 인식한 것은 그 어린이의 너구리 일반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고 이는 그 어린이의 배움과 실천에도 영향을 준다. 장래 생물학자가 되고 싶다고 느낀다. 그런데 캐나다 도심에서 주택에 사는 어른이라면 너구리는 성가신 동물일 수 있다. 쓰레기통을 뒤져서 헤집고 다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이들 개인과 어른 개인은 똑같은 너구리를 대상으로 인식하지만 이에 대한 인식틀은 조금씩 달라지게 되고 같은 어린이라고 하더라도, 같은 어른이라고 하더라도 스키마는 다르다. 스키마타 역시도 너구리를 보고 즉각 반응해서 쫓아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숨어서 관찰을 하는 사람도 있다.

스키마는 인지적 판단자에게 순발력을 더해주기도 한다. 수학적 스키마가 잘 잡혀있다면 거스름돈을 줄 때 전에 안준 액수를 결정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이를 미리 접해보지 않은 경우에 비해 스키마가 입력되어 있으면 남에게 손해를 안끼친다. 그리고 처음 접하는 상황 조건에서도 이해의 심도가 빠르게 얻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스키마가 잘 잡혀있는 경우에는 학습 능력도 향상된다.

그런데 스키마는 때로는 전형성과 마음갖춤새처럼도 되는 것 같다. 스키마타 형성과 사용 방식에 따라서는 분별력과 비분별력으로 이어지는 유형의 방식이 존재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인종차별적 언사로 분류되는 스키마의 경우 양의적이고 심각하기도 하다. 흑인이나 히스패닉에 대한 인식은 스키마로 되어 스키마타를 결정하기도 한다. 개인을 보라고 할 때도 개념적인 전형성에 의존하기도 한다면 특정인이 대처 능력은 순발력이 있어도 너무 무섭다든지 (harsh) 하는 선생님들/학생들을 생각해보자. 예컨데 너무 엄격해서 권위적인 스키마타를 실천하는 선생님들이나 오크녀다 빻았다와 같은 언사를 쉽게 실천하는 학생들은 인지적 판단은 순발력이 있더라도 오히려 느리고 깊은 사고를 해야 된다는 것과 같은 구현례가 있다.

이경우 생존과 연관이 깊으면 교정해야 된다고 해도 교정이 안되고 이어지는 경우가 있어서 유의된다. 특히 범죄자가 되어 여러 번 사기를 치는 경우를 생각해볼때 스키마타 자체가 변화하지 않는 경우다. 사기꾼적인 스키마타가 발전된 경우 순발력과 실천력은 보장되어도 그것은 개성이기보다 비정상적인 반사회적 행동이다.

이런 심각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스키마의 편향적인 것이 인지 발달에 영향주는 경우가 있다. 직업을 오랫동안 못가진 사람이 나는 일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보조금을 안받으려고 하는 경우에, 모는 아들에게 너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고 하면서 잘 정련된 흐름으로 설득한다고 할때 아들은 보조금을 받는게 불가피해지기도 한다. 이 경우 외형적으로 말을 아주 정련된 흐름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아들에게는 남들이 잘 모르는 대처 능력이 약화되게 되고 현실 순응적, 안주화가 되어 스스로 벌어먹고 못살아가는 처지가 되기도 한다. 이 경우 그 시초의 대화를 잘 보게 되는데 이 경우의 기준은 과연 말 표현이 누가 정련되었으냐라서 기존의 스키마타가 잘 발달된 사람을 더 쳐준다. 물론 모와 아들의 대화는 상식적으로 험한 주제는 아니지만, 그전부터 있던 일도 본다면 스키마라는 것이 사람마다 다른 경험에 의한 것이라 서로의 그순간의 인식 외적인 것도 결정에 영향을 준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학생인 아들보다 세상을 더 오래 살았던 뺑덕어멈 모가 인지적 판단을 잘한다고 여겨지는 상식보다는 각자의 경험이 어떻게 판단의 구조에 영향을 주는지를 늘 살펴보는 것도 방법이 될 것 같다. 내 경우 글을 다 정확한 문장으로 쓴다는 평을 받았는데 잘 모르던 순간에도 뭔가 오해가 될만한 것에 대한 스키마가 5세도 되기전부터 발현되서 남들은 안느끼고 넘어가는데 대한 스키마타 형성이 되서 같다. 물론 나도 모르는게 많고 풀타임 학문 전공자에 비해서는 아주 잘하는 것은 아닌데 스키마의 오류 가능성을 늘 생각해보려고 하는 태도를 학문에 잘 쓰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그러다보니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학계에서도 쟁점이 되는 주제들, 예를 들면 특정 정서는 신경전달물질 분비가 우선이냐 특정 정서가 우선이냐, (행복해서 세로토닌이 분비되는가, 세로토닌이 분비되서 행복한가) 와 같은 주제에 대해 달리 보는 관점이 조금 잘 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물론 지금은 불가능한데 스키마타적으로 발견을 이루는 정도는 되었다. 예컨데 상식은 인텔 GPU가 지원이 안되는 게임을 원활히 돌리는 기법을 발견해서 공유도 했었고, 근시안이 잠시 좋게 되는 조건도 의미있게 논구해봤고, MPEG 계열의 영상을 편집에 유리하게 하는 기법도 발견해서 해설한 스키마타는 있게 되었다.

자기PR이기보다, 판단 정확도와 순발력이 높아지기도 하는게 스키마타화이고, 그 반대도 된다는 것. 지금은 뇌 영역 활성화 패턴이 바뀌어서 아주 최적은 아닌데 관심 주제로 생각해본다. 이는 일반심리학 교과서 한 권과, 학습과 기억 교과서 한권 정도 읽어보고 발상이 되서 써봤다. 물론 구체적 진전보다는 시론적인 특성이라 아주 대단하지는 않은데 가끔 생각이 나는 주제다.